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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3.

2011/06/03 06:32 from 하나



1.
  한 시간이 꼬박 걸리는 출근길 때문도 아니었다. 긴 출근 시간 탓에 여섯 시, 아무리 늦어도 여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서너시간 씩 자고 출근하는 날도 많았지만 그로 인한 피로 때문도 아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땐 아무리 깊이 잠에 들어 있더라도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오면 귀신같이 일어나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고 잘도 내렸는데, 육 년 째 집에서 삼십 분 이상 걸리는 거리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고 살다보니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한 번 잠에 들면 내려야 할 때가 되어도 일어 날 줄을 모른다. 퇴근 길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상수역에서 내려야 할 것을 응암순환구간까지 가 버린 적도 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홍대 앞에서 내려야 할 것을 동교동 너머까지 가 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다. 
  익숙하지 않은 새 구두 때문에 양 쪽 발에 물집 터진 상처가 하나씩 생겼지만 이내 아물었고, 딱지가 한 번 지고 난 뒤엔 구두에 발이 완벽하게 적응되어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목이 얇은 편은 아닌데도 하루 종일 매고 있어야 하는 넥타이에는 새 구두보다도 훨씬 더 빨리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수업 준비는 굳이 잘 하려 애 쓰지만 않으려면 얼마 가지 않아서 요령이 생기더라. 그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수업 내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했던 것. 원래 목소리가 큰 것도, 평소에 목소리를 크게 내려 하는 것도 아닌지라 수업 시간 내내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는 아이들보다 더 큰 목소리를 쥐어 짜 내다 보면 한 시간 수업을 끝내는 것만으로도 온 몸의 진이 다 빠졌는데, 그러다 보면 짜증도 나고 싫증도 나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맞서게 되고, 감정을 소모하다 보니 스트레스는 자꾸만 쌓여가고, 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같이 실습을 나갔던 후배 S가 어느날 넌지시 물었다. "오빠도 그래요?" 다른 선생님들은 그래도 아이들하고 많이 친해졌던데, 아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해 주고 싶어하던데, 벌써 정이 많이 든 것 같던데, 자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단다. 사실 나도 그러니까, 그래서 S의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나보다. 아이들에게 도무지 정이 가질 않으니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학교에 있는 시간들이 달가울 리가 없다. 한 달 동안 학교에서 실습을 하는 내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여기 왜 있나 싶은, 그런 기분만으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으니 그 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간 때문도 아니고 정 때문에, 아이들에게 정 붙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S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나야 원래 교직에 마음이 없었으니 상관 없지만, S는 실습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교직만 생각하고 있었을텐데 실습을 마칠 무렵 쯤엔 딱히 그렇지도 않은 눈치다.

  
2.
  실습을 막 시작할 무렵 내가 실습생으로 있던 학교에 찾아오셨었던 B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사랑을 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오라" 하셨다. 시험 결과는 보다시피 꽝,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손바닥만한 정도 붙질 않는데 사랑은 무슨. 시험이 끝난 뒤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꽝, 일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었던 누군가와 나는 어디가 다른 걸까. 아니면, 열 다섯 살 짜리 남자아이들이 아니라 다른 대상들과 함께였다면 어떤 사랑을 줄 수 있었을까. 
  열 다섯 살 짜리 남자아이들을 상대하기에는 성격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였을 수도 있다. 시끄러운 것,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기에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 열 다섯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용납할 수가 없어서 일 수도 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수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수도'를 꼽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어떤 '수도'를 꼽든지 문제는 나한테 있을테다.


3.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보다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더 무섭다. 그들의 평가가 더 예리하기 때문인데,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선배 J때문이다. 언젠가 나를 잘 모르는(그러니까 나와 그리 많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지 않았던) 선배 J는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선배와 술을 마셔 봤던 것도 그 때가 유일하다. 과 행사 때문에 단체로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만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것 참. 아무튼, 묵은 기억 속에서 선배가 내게 했던 이야기를 정확히 끄집어 낼 수는 없지만 대충 요약하고 덧붙이자면 이렇다. "너는 왜 네가 소통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왜 네 주위에 네가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사실을 많지 않느냐. 이 사람도 있고 저 사람도 있고 하여간 많은데 너 혼자 그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면, 네 주위에 가지고 있는 네 사람들은 너의 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그 사람들은 무엇이 되는 것이냐."
  지금 와 다시 선배 J의 저 말을 곱씹어보면 "싸구려 감성으로 징징거리지 좀 마."정도의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그냥 징징거리지좀마병신아, 정도로 짧게 이야기해 줬어도 됐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걸 보면 선배 J에게 나는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였나 보다. 나에게도 선배 J는 끝내 별로 친하지 않은 선배 정도로 끝난 것 같은데, 징징거리지좀마병신아, 라고 내게 (속으로) 욕을 했었기 때문은 아니다. 예리해서 친해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고, 나는 군대에 갔고, 선배는 졸업을 했다.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어쩌다 가끔 '그랬다더라'하는 소식을 듣고, 어쩌다 가끔 연락이 닿은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선배 J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여러가지 '수도' 중 유력한 후보 하나가 어쩌면 '내가 여전히 자꾸징징거리는병신이라서'이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혼자서 글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면서 허구언날 사랑타령은 잘도 하는 주제에, 아무리 어리고 시끄러운 열 다섯 살짜리 남자 아이들이 상대라고는 하지만 그 중 한 아이 한 사람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은 저 병신짓을 아직 고치지 못해서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


4.
  그래서...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날이 밝아온다. 잠을 자지 않았다. 잠자리가 불편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잠이 오질 않았다. 한 달 동안의 좋은 습관, 아침형 인간 습관은 실습이 끝남과 동시에 단번에 무너진다. 술 몇 번 마시고 나니 한 달 전으로 도로아미타불. 언제 좀 사람처럼 사나, 졸업과 취업을 앞둔 스물 다섯 살 짜리 건실하고 건전한 청년 노릇은 언제 해 보나 싶다. 스물 여섯 먹은 고학력 백수가 되면 좀 달라질텐가.
  지금도 (학생이면서) 백수다. 백수가 되었다. 실습을 나가기 직전에 일 년 넘게 일했던 가게가 망해버렸다. 마지막 날 술을 많이 마셨고, 울었다. 울면서 쪽팔려했고, 쪽팔림을 무마하려고 제가 워낙에 뻔뻔하지가 못해서... 라며 변명을 하기도 했다. 일 년 넘게 일하며 내 집처럼 들락거리던,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알게 되었던, 몸 비비고 살던 구석 하나가 사라져버려서 이기도 하지만 그 점을 떠나서라도 언제나 끝은 슬프다. 슬퍼서 울었다. 여전히 병신인지는 몰라도 징징거리길 잘 한다는 건 분명하다.
  백수가 되어 먹고 살기가 빠듯하다. 고기가 먹고 싶은데 먹지를 못한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약속된 수입은 전혀 없다. 어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종강 이후 바로 집에 내려가 여름을 보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열 시에 수업이 있다. 여섯 시 반이다. 배가 고프다. 맥주 한 캔 마시고 나면 배불리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참자. 건실하고 건전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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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선형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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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suji 2011/06/16 17:31

    수고했어. 토닥토닥. 내려오면 고기사줄께.